『소스 코드: 더 비기닝』은 단지 빌게이츠라는 인물이 얼마나 똑똑했는지, 어떤 시대에 어떤 기술을 개발했는지를 다룬 책이 아니다. 그보다는 한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를 알아가고,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갔는지를 차분히 들려주는 기록처럼 느껴졌다. 그 중심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있다. 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두지 않고, 무리하게 바꾸려 하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함께 걸어간 부모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. 책을 읽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부모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.
나도 몰랐다, 함께 있는 시간만으론 부족하다는 걸
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느낀다. 유튜브나 블로그에 나오는 다양한 육아 팁들을 보며, '이거 나도 하고 있는데 왜 우리 아이는 다르게 반응하지?' 하는 순간들이 생긴다. 아기랑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, 요즘 정말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. 아이는 매일 함께 있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고, 들여다보면 볼수록 ‘아, 이 아이는 이런 아이였구나’ 싶을 때가 많다. 『소스 코드: 더 비기닝』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, 빌게이츠의 부모님도 그걸 참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. 단순히 똑똑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 게 아니라, 조용하고 몰입에 강한 성향을 가진 아이라는 걸 인지하고, 그 성향에 맞춰 바깥 활동이나 대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. 그걸 억지로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와닿았다. 내가 요즘 하려고 애쓰는 방향과 닮아 있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.
감정을 다루는 말, 습관처럼 쓰고 있나
빌게이츠가 어릴 적 카드 게임에서 계속 지다가 결국 이겼던 일화가 나온다. 그 과정에서 '머리를 써 봐'라고 격려했던 사람은 어른이었다. 나 같으면 계속 지는 아이에게 아 안되는구나..라고 무심코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 뜨끔했다. 사실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되기란 쉽지 않다. 아이에게 그런 말을 툭툭 던지기 전에 내 감정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걸,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은 또 별개다. 책을 읽다 보면, 빌게이츠 부모님이 그걸 의식적으로 훈련했음을 느낄 수 있다. 가정 안에서 감정 표현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, 어른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이가 감정을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. 이건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든다. 내 아이에게도 감정 언어를 조금 더 익숙하게 만들어주고 싶다. ‘속상했구나’, ‘그건 무서웠겠다’ 같은 말들. 내가 먼저 자주 써야 아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지. 요즘 나 자신에게 “나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어른인가?”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.
교육은 방향이 아니라 맞춤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다
가끔은 아이를 키운다는 게 마치 수많은 매뉴얼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. 유아식은 어떻게, 잠 습관은 어떻게, 책은 언제부터 어떤 걸… 그런데 갈수록 그게 ‘정답 찾기’가 아니란 걸 알아간다. 이 아이가 누구인지,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를 모르고선 아무리 좋은 방법도 헛돌 수밖에 없다. 그래서 요즘은 내가 노력해야 할 방향이 ‘정답을 찾는 것’이 아니라 ‘아이를 더 잘 아는 것’이라는 걸 느낀다. 『소스 코드: 더 비기닝』에서 그런 모습이 자주 보였다. 부모는 빌게이츠가 자폐 성향을 가졌을 수도 있었던 아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, 당시엔 그저 그 아이가 가진 방식을 존중하면서, 필요한 외부 자극을 잊지 않았다. 야구팀에 넣고, 가족 외식 자리에 데리고 나가고,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에도 함께 했다. 강제로 바꾸려 하지 않고, 대신 아이가 세상과 마주칠 수 있는 문을 조금씩 열어줬다. 나도 그렇게 해보려 한다. 아이의 기질은 있는 그대로 두고, 그 기질이 더 넓게 퍼질 수 있게 환경을 설계해보는 것. 그게 쉽진 않다. 정말 많은 관찰과 고민이 필요하다. 피곤한 하루 속에서도 아이의 표정 하나, 반응 하나에 더 집중하려면 체력보다 진심이 먼저다. 하지만 그게 결국 부모가 해야 할 공부인 것 같다.
책을 덮고 난 뒤에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건, ‘정서지능은 결국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구나’ 하는 생각이었다.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, 아무리 교육 환경이 좋아도, 결국 감정이라는 것을 다룰 수 있어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, 혼자서도 자신을 견딜 수 있다. 나는 내 아이가 그런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. 남과 비교해 앞서가는 사람이기보다는, 자기 마음을 알고 그걸 잘 다루는 사람. 『소스 코드: 더 비기닝』은 내가 지향하는 교육 방향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.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, 말 걸어주고, 기다려주는 그 태도. 그걸 오늘도 연습해야겠다.